2011년에 파리 퐁피두센터에 간 적이 있다.

미술을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도 작품을 전부 이해해서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건물은 남았다. 배관과 에스컬레이터와 구조가 밖으로 드러난,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바깥에 나와 있는 건물. 처음 보면 조금 공사 중 같고, 조금 장난 같고, 그런데 그게 파리 한복판에서 아무렇지 않게 미술관으로 서 있는 게 좋았다.

그래서 퐁피두라는 이름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작품보다 장소를 먼저 생각했다.

그것도 여의도 63빌딩이라니.

63빌딩 옆에 들어선 퐁피두센터 한화의 낮 외관
한때 서울의 미래처럼 보였던 금빛 타워 옆에, 낮에는 빛을 들이고 밤에는 빛을 내보내는 새 미술관이 붙었다. 이미지 제공: Centre Pompidou / Hanwha Foundation of Culture.

한때 서울의 전부였던 건물

63빌딩은 나에게 꽤 오래된 이미지다. 서울에 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건물. 금빛 유리, 한강, 전망대, 수족관, 가족 나들이, 관광버스. 지금처럼 서울의 이미지가 롯데월드타워, 성수, 한남, DDP, 더현대 같은 여러 장면으로 쪼개지기 전에는, 63빌딩이 서울의 미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랜드마크에도 시간이 흐른다.

한때 미래였던 것은 어느 순간 추억이 된다. 더 높은 건물이 생기고, 더 새롭고 더 빠른 장소가 도시의 얼굴을 나눠 갖기 시작하면, 예전의 상징은 사라지지 않은 채 조금씩 배경으로 물러난다. 63빌딩도 그랬다.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서울을 대표하는 유일한 이미지도 아니었다.

그 건물에 미술관이 들어왔다.

수족관 자리의 빛의 상자

퐁피두센터 한화는 2026년 6월 4일 문을 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와 한화문화재단의 협력으로 만들어졌고,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했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공간은 여의도 63빌딩 안, 예전에 수족관으로 쓰이던 구조를 다시 만든 것이다. 네 개 층, 1만 제곱미터가 넘는 규모, 두 개의 전시실. 파리 퐁피두센터는 이 장소를 ‘빛의 상자’라고 설명한다.

이 표현은 낮보다 밤에 더 쉽게 이해된다.

밤에 빛나는 퐁피두센터 한화 외관
공식 건축 설명이 말하는 ‘빛의 상자’라는 표현은 밤 장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이해된다. 이미지 제공: Centre Pompidou Hanwha.

낮에는 자연광이 유리 파사드를 통해 들어오고, 밤에는 내부의 빛이 도시 쪽으로 번져나간다. 63빌딩의 수직적인 몸집 옆에, 수평으로 누운 흰 빛의 띠가 붙은 셈이다. 새로 지은 초고층으로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있던 건물을 비워내고 다른 리듬을 붙이는 방식이다.

개관2026년 6월 4일
건축Jean-Michel Wilmotte, WILMOTTE & ASSOCIES / 간삼건축
전시매년 두 차례 퐁피두 소장품 기반 기획전

파리 본관이 닫힌 시간

타이밍도 흥미롭다. 파리 퐁피두센터 본관은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대규모 보수에 들어갔다. 건물 전체가 닫히고, 소장품은 그랑 팔레, 퐁피두 메츠, 해외 거점 등 여러 장소로 흩어진다. 그러니 “파리에서는 못 보고 서울에서는 본다”고 말하면 조금 부정확하다. 본관은 닫혔지만, 퐁피두의 소장품과 프로그램은 바깥에서 계속 움직인다.

다만 그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지금 퐁피두는 하나의 건물보다 여러 도시의 별자리처럼 움직이고 있고, 서울은 그 별자리 안에 새로 들어온 밝은 점 하나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은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기간은 2026년 6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다. 공식 전시 소개는 퐁피두 컬렉션 43인과 KOREA FOCUS 11인을 함께 걸고, 퐁피두 소장품 91점과 한국 근현대 작품 21점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프레스킷 기준으로는 총 54명, 112점의 전시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건 KOREA FOCUS다. 단순히 프랑스 컬렉션을 서울에 가져다 놓는 데서 끝내지 않고, 20세기 전반 한국 근대 예술이 파리를 어떻게 상상했고 받아들였는지를 같이 묻는다. 특히 이상(李箱) 같은 이름이 들어오면, 이 전시는 갑자기 수입된 브랜드가 아니라 서울 안에서 다시 읽히는 역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찾아갈 이유

이번 변화는 미술관 하나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63빌딩 전체가 다시 쓰이고 있다. 60층 전망대는 미디어아트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16년 동안 닫혀 있던 옥상도 열렸다. 한화생명 쪽 리뉴얼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에는 뉴욕 하이라인과 시카고 루리 가든의 식재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피트 아우돌프가 설계한 ‘63 아우돌프 가든’도 언급된다. 다만 이 정원은 퐁피두센터 한화 자체라기보다 63빌딩 리뉴얼 전체의 일부로 보는 게 정확하다.

퐁피두센터 한화와 이어지는 야외 정원
미술관은 전시장만이 아니라 정원, 로비, 옥상, 식음 공간까지 묶어 63빌딩을 다시 찾아갈 이유로 바꾸려 한다. 이미지 제공: Centre Pompidou Hanwha.

높이로 경쟁하던 건물이, 이제는 담고 있는 것으로 사람을 부르려 한다. 나는 이 전환이 좋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늙어가는 방식은 둘 중 하나다. 계속 예전 사진 속에만 남거나, 다른 용도로 다시 읽히거나.

이런 관찰과 취향을 기록하는 방식 자체는, 블로그를 다시 열며 남기고 싶었던 방향과도 닿아 있다. 장소가 바뀌는 순간을 개인의 기억과 겹쳐 적어두는 일이다.

63빌딩은 후자를 택한 셈이다.

미술관이 늘어난다는 것

나는 이런 공간이 늘어나는 게 좋다. 사람에게도, 도시에게도, 예술가에게도.

미술관은 효율이 낮은 공간이다. 빨리 소비하기 어렵고, 바로 정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고, 어떤 공간에서는 이유 없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비효율 때문에 도시에는 미술관이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생산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도시는 그런 시간을 담을 장소를 가져야 한다.

서울이 글로벌 메가시티가 되어간다는 감각도 이런 데서 온다. 더 높은 건물이 하나 더 생기는 데서가 아니라, 화요일 저녁에 들를 수 있는 것의 목록이 조금씩 늘어나는 데서.

아직 가보지는 않았다.그래서 이 글은 전시 리뷰가 아니라 방문 전 도시 노트에 가깝다. 작품이 어떤지, 동선이 어떤지, 빛이 실제로 좋은지는 다녀온 뒤에 다시 써야 한다.

누군가의 첫 퐁피두

2011년의 나는 파리에서 퐁피두를 처음 만났다. 미술을 잘 몰라도 남는 게 있는 공간이라는 걸 그때 배웠다.

2026년의 누군가는 여의도에서 처음 만날 것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왔다가, 데이트하러 왔다가, 수족관의 기억을 따라 왔다가. 그리고 그중 몇은 미술을 모르는 채로도 무언가를 안고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의 첫 퐁피두가 파리가 아니라 여의도라는 것.

미술관이 생겼다는 건 그런 뜻이기도 하다.

참고한 자료